“내일 열두 시에 국밥 한 그릇 하자. 시장 입구에 있던 그 집, 아직 하더라.”
반가운 이름이다. 예전 같으면 “수육도 한 접시 시킬까?” 했을 텐데, 요즘은 친구의 문자를 받으면 다음 날 일할 시간부터 헤아리게 된다. 저녁에 나가려면 낮에 한숨 자 둬야 한다. 먼저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내일은 좀 쉬려고”라는 답장을 썼다 지운다.
지난번에도 거절했는데. 이번에도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할까?
문자창을 위로 조금 올려본다. 지난번에 내가 보낸 답은 “오늘은 어렵겠다. 다음에 보자”였다. 그 아래 친구가 남긴 말은 “그래, 일 잘 보고”가 전부다. 서운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 나는 벌써 이번이 두 번째라고 세고 있다.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결국 “그래, 열두 시에 거기서 보자” 하고 답한다.
■ 미안해서 나간 점심,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
국밥집에 들어서니 친구가 안쪽에 자리를 잡아 놓았다. 친구는 예전처럼 깍두기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준다. 내가 국밥 한 숟갈에 깍두기 하나씩 올려 먹는 걸 아직 기억한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의 별명이 뭐였더라, 둘이 한참을 더듬다가 한목소리로 같은 이름을 대고 웃는다. 이럴 때는 나오길 잘했다 싶다.
그런데 국밥 그릇이 비어갈수록 자꾸 벽시계에 눈이 간다. 집까지 가는 데 삼십 분, 옷 갈아입고 누우면 한 시 반. 지금 일어나야 한 시간이라도 잘 수 있다. 친구가 이야기를 하나 더 꺼냈는데, 나는 어느새 돌아갈 버스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오랜만에 봤는데 커피는 한잔하고 가야지.”
친구에게는 커피 한잔이지만 내게는 오늘 잠을 한 시간 덜 자는 일이다. 잠깐이면 된다는 친구가 야속하다가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몇 시에 일하러 나가는지, 몇 시에는 집에 가야 하는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친구가 들은 건 “열두 시에 보자”는 말뿐이다. 밥을 먹고 나면 내가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집에 돌아와 베개를 베고서야 아까 하고 싶었던 말이 떠오른다. “나 오늘은 밥만 먹고 가야 해. 그래도 너랑 한 그릇 먹으니까 좋다.” 그 말을 자리에 앉을 때 했더라면, 친구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계를 몇 번 덜 봤을 것 같다.
■ 친구가 그리운 건 예전에 함께 먹던 점심일 수 있다
일할 때는 열두 시만 되면 누군가 의자를 밀며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누구 하나 날짜를 잡을 필요도, 상대가 오늘 나를 만나고 싶은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국밥집 앞에서 “오늘도 여기냐?”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발은 나란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퇴직하고 나면 먹고 싶은 메뉴가 있어도 누구와 먹을지는 새로 정해야 한다. 시장을 걷다가 옛날 국밥집을 발견한 친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내 얼굴이었을 수도 있다. 문자에 적힌 “아직 하더라”라는 말도 그렇다. 그냥 국밥이 먹고 싶었다면 집 가까운 데로 갔을 텐데, 친구는 굳이 둘이 다니던 집을 찾아냈다. 그걸 나한테 알려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연락해 준 마음이 반갑다. 다만 친구에게 새로 생긴 여유가 내 하루에도 똑같이 생긴 건 아니다. 친구에게 화요일 낮은 점심 손님이 빠져나간 뒤에도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내게는 저녁 일을 앞두고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 놓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서로 점심시간을 손목시계만 보고도 알았다. 이제는 말로 알려줘야 안다.
■ 사주로 보면, 거절이 어려운 내 마음도 이해가 된다
사주에서 비겁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나 동료와의 관계를 살펴볼 때 쓰는 말이다. 함께하는 데 마음을 많이 두는 사람은 “밥 먹자”는 한마디를 듣고 그간의 정까지 떠올릴 수 있다. 나에게 그 점심이 각별하니 상대에게도 그럴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일은 어렵다’는 짧은 답장이 내 눈에만 유난히 매정해 보인다.
관성은 약속이나 역할을 대할 때 스스로 지키려는 기준과 연결해 풀이하기도 한다. ‘오랜 친구가 두 번 불렀으면 한 번은 나가야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친구와 그런 약속을 한 적은 없다. 내가 속으로 정한 횟수다. 사주만으로 누가 더 정이 많고 누가 더 서운해할지 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먼저 만든 기준 때문에 쉬어야 할 날까지 미안해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는 있다.
그럴 때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만하다. ‘친구를 만나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내일 낮에 잠을 못 자는 게 걱정됐던 걸까?’ 목요일 저녁에 같은 국밥집에서 만나자고 했다면 선뜻 나갔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바꿔야 할 건 약속 시간이다.
■ “내일 낮엔 좀 자야 해. 목요일 저녁은 어때?”
처음엔 “요즘 좀 바빠. 나중에 보자”가 편하다. 하지만 듣는 친구는 다음 주에 다시 물어봐야 할지, 한동안 연락을 말아야 할지 알기 어렵다. 나도 보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갈 수 있는 시간을 한 번에 전하면 말이 한결 수월해진다.
“야, 그 국밥집은 나도 가고 싶다. 내일은 저녁에 일 나가서 낮에 좀 자야 해. 목요일 여섯 시는 어때?”
친구가 “낮에 잠깐 나오는 것도 안 돼?” 하고 되묻는다면 길게 해명할 필요는 없다. “응, 일하는 날엔 낮에 자 둬야 저녁에 덜 힘들더라.” 그만큼이면 친구도 다음에 몇 시쯤 연락하면 좋을지 알게 된다. 당장 만날 날을 정하기 어려우면 “이번 주 일정 보고 내가 전화할게”라고 말하고, 약속한 대로 먼저 연락해도 좋다. 친구가 세 번째로 물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거는 전화 한 통이, 지난번 거절에 대한 긴 설명보다 반가울 수 있다.
몇 번까지 미안해해야 할까. 이미 잡은 약속을 내가 바꿨다면 미안하다고 말할 일이다. 하지만 친구가 제안한 날에 쉴 시간이 필요하다면 “불러줘서 고맙다”는 말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시간을 맞춰 국밥집에 간 날에는 벽시계부터 찾지 않아도 된다. 친구가 빈 그릇을 밀며 “커피 한잔할까?” 하고 물으면, 이번엔 마음 편하게 먼저 일어설 수 있다.
“가자. 오늘 커피는 내가 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