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나만 먼저 연락하는 관계

  •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석 달째 조용하다. 나만 이 친구와 가깝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석 달째 조용하다. 나만 이 친구와 가깝다고 생각했을까?

    통화기록에서 친구 이름을 눌러봤다. 지난번에도 내가 걸었고, 그전에도 내가 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건 전화를 끊으려던 참에 친구가 했던 말이었다.

    “야, 벌써 끊게? 나 너한테 할 얘기 하나 더 있어.”

    그날도 한 시간을 넘게 떠들었다. 귀가 뜨끈해져서 휴대폰을 반대쪽 손으로 옮겨 쥐면서도 둘 다 끊을 생각을 안 했다. 그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있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렇게 반가우면서, 왜 내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을까?

    ■ 처음 한 달은 서로 바쁜 줄 알았다

    첫 달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우리 나이에 한 달쯤이야 금방 지나가니까. 두 번째 달에는 시장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찐빵을 보고 휴대폰을 꺼냈다. 찜통 뚜껑을 여니 김이 확 올라왔다. 예전에 둘이 여기서 찐빵 하나씩 들고, 뜨거운 줄 알면서도 성급하게 한입 베어 물던 생각이 났다.

    “너 여기 기억나?”

    그 한마디면 반가워할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 이름까지 찾아놓고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도 내가 걸면 친구가 먼저 내 생각을 하는 날이 있는지 영영 모를 것 같았다. 찐빵 몇 개를 봉지에 담아 돌아오는데, 친구는 내가 오늘 전화를 걸려다 말았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려보자고 정한 사람도, 기다리다 섭섭해진 사람도 나 혼자였다.

    석 달쯤 지나니 마음에 걸리는 건 전화 횟수가 아니었다. 정확히 반반씩 걸자는 것도 아니고 지난 세월을 따져 묻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손을 놓으면 이 친구와는 그대로 멀어지는 걸까. 그게 서운했다.

    ■ 나는 전화한 날을 기억하고, 친구는 통화한 내용을 기억한다

    몇 해 전 허리가 아프다고 흘리듯 말한 적이 있다.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까지 한 것도 아니었다. 통화하다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아이고, 요새는 오래 앉아 있으니 허리가 뻐근하네” 하고 지나간 말이었다. 그런데 다음 통화 때 친구가 대뜸 물었다.

    “너 그때 허리 아프다더니, 요새는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아?”

    나는 잠깐 대답을 못 했다. 내가 아프다고 한 건 잊었는데 친구는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하다는 데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별일 없지?” 하고 지나갔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그 말을 따로 담아두었다가 내가 전화하자 꺼낸 것이다.

    같은 통화를 두고 나는 ‘오늘도 내가 먼저 걸었네’ 하고, 친구는 ‘지난번에 아프다던 건 좀 나았나’ 생각했을 수 있다. 통화 목록에는 누가 먼저 걸었는지는 남아도 누가 무슨 말을 기억해뒀는지는 남지 않는다. 목록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정작 그 목소리를 듣고 반가웠던 날까지 별것 아닌 일로 치게 됐다.

    그래도 내 서운함은 남아 있다. 나도 가끔은 부엌에서 손을 닦고 전화를 받으러 가다가, 화면에 뜬 친구 이름을 보고 “웬일이냐?” 하고 웃어보고 싶다. 친구와 실컷 얘기하는 즐거움과 누군가 먼저 나를 찾아줬을 때의 반가움은 조금 다르다.

    ■ 사주로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때와 말이 나오는 때가 다르다

    사주에서 식상은 속에 있는 생각이나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꺼내는 힘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찐빵을 보자마자 “너 생각나서 전화했어” 하고 말하는 내 모습에 비춰볼 수 있다. 내게는 친구가 떠오르는 일과 전화를 거는 일이 거의 붙어 있다. 그러니 친구에게서 석 달 동안 전화가 없으면 ‘나는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나?’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쉽다.

    인성은 들은 말이나 경험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성향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친구가 허리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다음 통화에서 안부를 묻는 장면이 그렇다. 어쩌면 친구는 그날 내 허리가 좀 나았다는 대답을 듣고 그것으로 마음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수화기 너머에서 ‘다음번엔 네가 먼저 걸어줬으면’ 하고 바랐다는 건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락 습관 하나로 누구의 사주에 어떤 기운이 강한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보니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누가 더 정이 많을까?’ 하고 따질 때는 답이 없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받아야 친구 마음이 느껴질까?’ 하고 물으니 답이 나왔다. 내 경우에는 용건 없이 먼저 걸려 오는 전화 한 통이었다.

    ■ “다음에는 네가 먼저 전화 좀 해라”

    어렵게 마음을 꺼내면서 “넌 내가 전화 안 하면 끝이냐?”부터 말하면, 친구는 지난 석 달 동안 얼마나 바빴는지부터 설명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나라고 한가해서 전화했냐?” 하고 받아치기 쉽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네 전화가 오면 나도 반갑겠다’는 것인데 얘기가 엉뚱한 데로 간다.

    오래된 친구 사이라면 평소 말투 그대로면 충분하다.

    “야, 너한테 전화하면 늘 재밌거든. 근데 가끔은 나도 네 전화 좀 받아보고 싶다. 다음엔 네가 먼저 해라. 별일 없어도.”

    혹시 친구가 “뭐 특별한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지” 하고 쑥스러워하면 이렇게 덧붙여도 좋다. “네가 시장에서 찐빵 하나 사 먹다가 ‘야, 나 지금 그 집 앞이다’ 해도 난 좋지.” 그 정도면 친구도 어떤 전화를 기다렸다는 건지 알아듣는다. 그 자리에서 꼭 전화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

    며칠 뒤 “뭐 하냐? 그냥 해봤다” 하고 전화가 온다면, “그러게, 진작 좀 하지”보다 “야, 네 이름 뜨니까 좋네”라는 말이 먼저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던 게 그 한마디였다는 걸 친구도 그때 비로소 알 테니까.

    반대로 마음을 전한 뒤에도 안부는 늘 내가 묻고, 친구는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한다면 내 쪽에서 조금 덜 애써도 된다.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에는 전화를 걸고, ‘내가 안 하면 또 몇 달이 갈 텐데’ 하는 의무감만 드는 날에는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이다.

    오래된 친구에게 바라는 게 그렇게 크지는 않다. 장날에 찐빵을 보다가 한 번쯤 그 친구도 내 생각이 나서, 먼저 내 이름을 눌러주는 것. 그게 그리웠다면 한 번은 말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