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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에게 서운한 말을 못 하고 혼자 삭이는 부모의 마음

    자식에게 서운한 말을 못 하고 혼자 삭이는 부모의 마음

    “바쁜 건 아는데, 내 전화 한 통 받을 시간도 없을까.”

    먼저 걸었던 전화에 답이 없어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는다.

    저녁이 되어 자식에게 연락이 오면, 기다렸다는 말 대신 “밥은 먹었니?”부터 묻는다.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다가도 통화가 끝나면 하지 못한 말이 남는다.

    걱정시킬까 봐 괜찮다고 했는데, 왜 내 마음은 갈수록 서운해지는 걸까?

    ■ 괜찮다는 말 뒤에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자녀의 생활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과 부모로서 관심받고 싶은 마음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바쁜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가끔은 먼저 안부를 물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마음이 있다고 해서 욕심이 많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하지 않은 바람은 상대가 알아차리기 어렵다.

    부모는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는 “괜찮다고 하셨으니 잘 지내시겠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배려하려고 아낀 말이 서로의 상황을 모르게 만드는 셈이다.

    서운함을 오래 눌러두면 작은 일에도 지난 기억이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 전화가 오지 않은 일에 지난 생일과 아팠던 날의 섭섭함까지 겹쳐지는 것이다.

    그러다 “너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니?”라는 말이 나오면, 자녀는 부모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보다 자신을 탓하는 말부터 듣게 될 수 있다.

    안부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서로를 방어하게 만드는 대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연락이 적다는 사실만으로 자녀의 애정이나 속마음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은 마음을 시험하는 기다림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말하는 일이다.

    ■ 사주로 돌아보는 책임감과 표현하지 못한 마음

    전통적인 사주 해석에서는 관성을 책임과 규칙, 맡은 역할을 지키려는 태도와 연결해 살펴본다.

    이 관점을 부모의 마음에 비춰 보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나는 부모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해하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에게 그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온 사람이라면, 외롭다는 말조차 자녀에게 짐을 지우는 행동처럼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라는 역할을 지키느라 자기 감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식상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쪽으로 해석하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서는 “내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전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다.

    어떤 부모는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음식을 챙겨 보내고, 어떤 부모는 건강을 묻는 말로 애정을 표현한다.

    그런데 자녀는 그 행동 속에 “나도 네 안부가 궁금하고, 내 이야기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

    내가 표현했다고 느끼는 것과 상대가 이해한 내용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동만으로 관성이 강하다거나 식상이 약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 명식이 없으므로 특정 기운을 배정할 수 없고, 감정을 아끼는 습관에는 살아온 환경과 가족의 대화 방식도 영향을 준다.

    여기서 사주는 부모와 자녀의 잘못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어떤 역할에 익숙하고 어떤 표현을 어려워하는지 돌아보는 틀이다.

    ■ 서운함을 참기보다 작게, 구체적으로 전하세요

    첫째, 상대를 평가하는 말 대신 내가 느낀 일을 말해 보세요.

    “너는 부모 생각도 안 하니?”라고 묻기보다 “요즘 통화가 뜸해서 네 소식이 궁금하고 조금 허전했어”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인성을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부모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 표현입니다.

    다만 감정이 크게 올라온 순간이라면, 바로 긴 메시지를 보내기보다 잠시 쉬었다가 가장 전하고 싶은 말 한두 문장으로 정리해 보세요.

    둘째, 막연히 자주 연락해 달라고 하기보다 서로 가능한 시간을 물어보세요.

    “주말 중에 잠깐 통화하기 편한 시간이 있니?”처럼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좋습니다.

    매일 연락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기보다 두 사람의 생활에 맞는 방식을 함께 찾는 것입니다.

    통화가 어려운 날에는 짧은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횟수를 채우는 일보다, 서로 무리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약속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셋째,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괜찮다는 말로 덮지 마세요.

    병원에 함께 가줬으면 한다면 “다음 주 진료 때 같이 가줄 수 있니?”라고 부탁해 보세요.

    자녀가 알아서 눈치채는지 기다리는 것보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편이 서로의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자녀의 연락만 기다리며 하루가 지나가지 않도록, 내 안부를 나눌 사람과 일상도 조금씩 넓혀 보세요.

    친구와의 짧은 통화나 동네에서 이어가는 활동은 자녀를 덜 사랑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생활을 돌보는 일입니다.

    부모가 서운한 말을 못 하고 혼자 삭이는 데에는 자녀를 배려하는 마음과 부모답게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함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할수록 자녀는 정말 괜찮은 줄 알 수 있다.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다.

    다음에 자녀에게 전화가 오면 “밥은 먹었니?” 뒤에 한마디를 더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목소리 들으니 좋다. 사실 오늘은 네 전화가 조금 기다려졌어.”

    서운함을 전하는 말이 꼭 원망이 될 필요는 없다.

    부모도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고, 때로는 먼저 안부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만큼, 기다리던 내 마음도 다정하게 대접해 주자.

  • 자식이 먼저 연락하지 않을 때, 나만 기다리는 것 같아 서운하다면

    자식이 먼저 연락하지 않을 때, 나만 기다리는 것 같아 서운하다면

    “내가 전화 안 하면, 우리 사이도 끊어지는 걸까.”

    통화 목록을 한참 내려봐도 자식에게 먼저 걸려온 전화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먼저 하지 말자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는데, 저녁이 되니 또 내가 아들 이름을 찾고 있다.

    목소리는 듣고 싶고, 나만 기다리는 사람 같아 서럽다.

    겨우 연결된 전화에서 “엄마, 무슨 일이야?”라는 말이 들리자 준비했던 안부 대신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하니?”

    보고 싶어 건 전화인데, 왜 나는 또 잔소리하는 부모가 됐을까?

    ■ “바빠서 그랬어”가 더 서운하게 들리는 이유

    바쁘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일하느라 힘든 것도 알고, 자기 가정을 챙기기에도 벅찰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며칠을 참았는데, 돌아오는 말이 “바빴어” 한마디면 기다린 내 마음은 갈 곳이 없어진다.

    ‘나는 바쁜 날에도 네 생각이 났는데.’

    이 말까지 꺼내면 부담을 줄까 봐 “그래, 밥 잘 챙겨 먹어”라며 전화를 끝낸다.

    부모가 기다린 것은 긴 통화가 아니라 “엄마는 잘 지내?”라는 짧은 질문이었을 수 있다.

    내가 먼저 찾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궁금해한다는 느낌이 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자식은 별일이 없으니 잘 지내실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쪽은 조용한 휴대폰에서 거리감을 느끼고, 다른 쪽은 그 조용함을 평온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 사주로 돌아볼 것은 자식복보다 내 마음의 습관

    서운함이 오래 쌓이면 이런 생각까지 들 수 있다.

    ‘나는 자식복이 없는 건가.’

    하지만 연락이 뜸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식복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주에서 식상은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성향과 연결해 해석하며, 돌보고 챙기는 모습으로 풀어보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돌아볼 것은 내가 사랑을 얼마나 자주 ‘해주는 일’로 표현해 왔는지다.

    밥을 챙기고, 필요한 것을 보내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는 일이 익숙했을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해 온 사람에게 자식의 안부 전화는 “나도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라는 답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전화가 없으면 내가 건넨 마음까지 잊힌 것 같아 서러운 것이다.

    물론 이런 행동 하나로 특정 십성이 강하다고 정할 수는 없으며, 살아온 경험과 현재의 외로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사주를 마음을 돌아보는 틀로 삼으면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나는 왜 자식복이 없을까’에서 ‘나는 어떤 표현을 받아야 사랑받는다고 느낄까’로.

    ■ 보고 싶다는 말이 잔소리로 바뀌기 전에

    “너는 어떻게 전화 한 통이 없니?”

    이 말 안에는 기다렸다는 마음이 있지만, 듣는 자식은 잘못을 지적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자식은 바빴던 이유를 설명하고, 부모는 그 설명에서 또 서운함을 느낀다.

    기다린 마음을 알아달라는 전화가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는 대화로 바뀌는 것이다.

    다음에는 첫마디만 바꿔보자.

    “별일은 없고,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서운함을 모두 숨기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마음부터 꺼내자는 것이다.

    원하는 연락 방식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주말에 잠깐 안부 나누면 좋겠는데, 너는 언제가 편하니?”

    막연히 자주 전화하라는 말보다 서로 가능한 시간을 정하는 편이 기다림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연락 문제로 다퉜다면 그날 바로 결론을 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까는 서운해서 말이 세게 나왔어, 사실은 네 안부가 궁금했어.”

    이렇게 내 말의 뜻을 다시 전하는 것도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 오늘도 내가 먼저 전화했다고 진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어디 한번 먼저 연락하나 보자.’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부터 휴대폰을 확인하는 일이 더 잦아질 수 있다.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자식의 사랑을 시험하는 시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 먼저 전화했다고 해서 내가 덜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늘 나만 연락하는 일이 힘들다면 그 부담은 솔직하게 말하고, 내 하루에도 다른 약속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친구와 짧게 안부를 나누거나 저녁 산책을 하는 동안만큼은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다.

    보고 싶어 건 전화가 잔소리로 끝나는 것은, 기다리는 동안 쌓인 서운함이 반가움보다 먼저 입 밖으로 나오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다음에는 서운함 뒤에 숨겨뒀던 말을 먼저 건네보자.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자식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잘 지내?”였듯, 자식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도 결국 “보고 싶다”였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