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해주셨잖아요. 이번에는 왜 안 되는데요?”
급한 사정이 있다고 해서 업무를 대신 맡아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능한지 묻기도 전에, 내가 대신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오늘은 어렵다고 하자 상대의 표정이 굳었다.
도와준 건 나인데, 거절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불편하다.
처음부터 엄격하게 대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내가 배려하면서도 말하지 않은 기준이 있었던 걸까.
■ 한 번의 배려가 다음번의 기준이 될 때
이런 상황에서 상사는 ‘사정을 봐준 것’으로 기억하고, 직원은 ‘이 정도는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같은 일을 겪었지만 서로 다른 기준을 배운 셈이다.
예를 들어 급한 개인 사정 때문에 보고서 마감을 한 번 미뤄줬다고 해보자.
상사는 이번만 예외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직원은 마감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설명이 부족했다고 해서 반복되는 지각이나 무리한 요구까지 상사의 책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가 배려의 뜻을 알아주기만 기다리면, 서운함은 쌓여도 업무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먼저 살펴볼 것은 ‘왜 고마워하지 않을까’보다 ‘우리가 같은 기준을 알고 있을까’다.
■ 사주에서는 배려하는 마음과 기준을 어떻게 볼까?
사주에서는 상대의 사정을 받아들이고 살피는 면을 인성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보기도 한다.
인성은 쉽게 말해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보호하려는 성향과 연결해 해석하는 요소다.
이런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람은 직원이 일을 못 끝냈을 때 결과만 보기보다, 무슨 어려움이 있었는지 먼저 헤아릴 수 있다.
덕분에 직원이 실수를 숨기지 않고 도움을 청하기 쉬운 상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는 일이 매번 업무를 대신 떠안는 행동으로 이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이해해주는 것과 책임을 대신 지는 것이 뒤섞이기 때문이다.
한편 관성은 역할과 책임, 규칙을 의식하는 성향으로 풀이한다.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도 신경 쓴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직원의 부탁은 들어주면서도, 돌아서면 ‘다른 사람들은 시간을 지키는데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배려하고 싶은 마음과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하는 것이다.
실제 명식 없이 이런 행동만으로 인성이나 관성의 강약을 정할 수는 없다.
다만 사주를 관계를 돌아보는 관점으로 활용하면, 나는 상대의 사정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책임은 어디서 나누는지 살펴볼 수 있다.
■ 직원은 정말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걸까?
부탁이 반복된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바로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직원은 허용된 범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의 요청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사주에서 식상은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밖으로 표현하는 성향으로 풀이한다.
이런 표현 성향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사람은 상사에게도 필요한 것을 바로 요청할 수 있다.
반대로 위계나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사는 그 말이 지나치게 거리낌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한쪽은 ‘물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그걸 어떻게 당연하게 요구하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례한 말투나 책임 회피를 성향 차이라는 말로 넘겨서는 안 된다.
판단에 도움이 되는 것은 기준을 분명히 설명한 뒤의 반응이다.
설명을 듣고 행동을 조정한다면 오해를 풀 여지가 있다.
반면 합의한 기준을 계속 어기고, 거절할 때마다 비난하거나 책임을 떠넘긴다면 구체적인 업무 행동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상대의 속마음을 추측하기보다 언제 어떤 일이 반복됐는지 살펴보는 편이 정확하다.

■ 좋은 관계를 지키려면 배려의 범위도 말해야 한다
먼저, 예외를 허용할 때는 어디까지인지 함께 알려주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급한 사정이 있으니 마감을 내일까지 조정하겠습니다. 다음 업무부터는 기존 일정대로 진행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직원의 사정을 받아주면서도 다음번 기준을 남길 수 있다.
두 번째는 도와줄 부분과 직원이 맡을 부분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이다.
“막힌 부분은 같이 확인하겠습니다. 수정과 최종 제출은 담당자인 ○○ 씨가 맡아주세요.”
상사가 도와준다고 해서 담당자의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서운함이 폭발하기 전에 반복된 사실을 짚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러느냐”는 말은 업무 대화를 고마움의 문제로 바꾸기 쉽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번 달에 마감 변경이 세 번 있었습니다. 다른 업무에도 영향이 생겨서, 다음부터는 지연이 예상되면 마감 전에 알려주세요.”
업무 기준은 특정 직원에게만 적용하지 않고 같은 상황에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상사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직원도 기준을 이해하고 따르기 쉽다.
잘해줬는데 내가 더 불편해진 이유는, 배려하면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충분히 말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상대가 그 범위를 존중하지 않는 경우라면 더 많이 참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친절을 거두는 일이 아니라,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책임을 분명히 나누는 일이다.
내 사주가 궁금하다면 ‘나는 부하복이 없을까’라는 질문에만 머물지 않아도 좋다.
상대의 사정을 받아들이는 면, 규칙을 지키려는 면, 내 생각을 표현하는 면이 전체 구성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보는 편이 자기이해에 도움이 된다.
“지난번에는 해주셨잖아요”라는 말을 다시 듣는다면, 미안해서 무조건 받아줄 필요는 없다.
“그때는 가능한 상황이었고, 이번에는 어렵습니다.”
그 말을 차분하게 할 수 있어도, 당신은 충분히 배려하는 상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