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친구 사이의 신뢰

  • 아내의 외도를 친구도 알고 있었다. 왜 나한테만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내의 외도를 친구도 알고 있었다. 왜 나한테만 말해주지 않았을까?

    “너, 그때 알고 있었어?”

    친구가 물잔을 내려놓았다. 잔 밑에 묻은 물을 냅킨으로 한 번 훔치고 나서야 내 얼굴을 봤다.

    “응. 네가 알기 전부터.”

    차라리 “무슨 소리야?” 하고 되물어주길 바랐다. 그랬으면 내가 잘못 짚었다고 하고 밥이나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한참 만에 꺼낸 대답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면서도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아내의 외도를 알았을 때와는 또 다른 저녁이었다. 아내에게는 그 사람을 언제부터 만났느냐고 물었다. 친구 앞에서는 다른 날짜가 궁금했다. 지난달에 나하고 둘이 국수를 먹던 날, 그때도 너는 알고 있었을까?

    ■ 국수 한 그릇 먹던 날이 자꾸 떠올랐다

    그날은 내가 먼저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저녁마다 늦는데 일이 힘든 모양이라고, 주말엔 바람이라도 쐬러 가야겠다고 했다. 친구는 면을 한 젓가락 집더니 “요새 너도 피곤해 보인다. 잘 챙겨 먹어라” 하고 대답했다. 그때는 내 걱정을 해주는 말로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친구가 화제를 돌린 것 같았다. 그날 젓가락을 잠깐 내려놓았던 것까지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 동작 하나에 무슨 뜻이 있었는지 내가 알 수는 없다. 친구가 알고 있었다는 말 한마디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점심 한 끼를 나 혼자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장 마음이 상한 건 내가 아내 자랑을 했다는 사실도, 친구가 그걸 듣고 있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친구가 “잠깐 걷자”고만 했어도 나는 걸음을 늦췄을 것이다. 어려운 얘기도 그렇게 꺼낼 수 있는 사이라고 여겼다. 나한테는 그만큼 가까운 친구였는데 그 친구한테도 그랬는지, 거기서부터 자신이 없어졌다.

    ■ “네가 상처받을까 봐”라는 말 뒤에 남은 질문

    “내가 말하면 네 집안이 어떻게 될지 겁이 났어. 네가 상처받을까 봐.”

    친구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데는 있었다. 나라도 가까운 친구에게 배우자의 외도를 알리는 말은 쉽게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게 어디까지인지, 괜히 전했다가 틀리면 어쩔지, 말을 꺼낸 뒤에도 몇 번이나 따져봤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내 쪽에서는 서운함이 하나 더 생겼다. 친구는 말을 할지 말지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조차 몰라서 아내에게 물어볼지, 누구와 의논할지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다. 나를 걱정했다는 말이 고맙게만 들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네가 말하기 어려웠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내가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아내 걱정을 할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어?”

    그제야 친구가 국수를 먹던 날 이야기를 했다. 가게를 나와 헤어질 때까지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 했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그날 말해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무엇을 망설였는지 친구 입으로 듣고 나니, 그날 내 말을 들으며 속으로 나를 안쓰럽게만 봤을 거라는 짐작 하나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

    ■ 사주로 보면, 친구에게 바란 건 내 편이라는 느낌이었다

    사주 이야기에서 비견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나 동료에 빗대어 풀이하기도 한다. 내 경우에 그 말을 대입해보니, 친구가 아내에게 대신 따져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적어도 둘이 같은 사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란히 앉아 국수를 먹으면서 서로 다른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게 유독 아팠다.

    인성은 누군가에게서 받은 말이나 경험을 마음에 간직하는 모습으로 읽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이 친구 앞에서 집안 이야기를 조금 해도 밖으로 옮기지 않는 점을 좋아했다. 어머니 일로 힘들었을 때도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내 사정을 먼저 말하는 법이 없었다. 예전에는 고마웠던 그 신중함이 이번에는 왜 이렇게 서운했을까. 이번 일에서만큼은 내가 꼭 알아야 할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사주로 친구가 침묵한 까닭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을 고르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너는 누구 편이었어?’ 하고 물으면 친구는 편을 고르라는 말로 들을 것이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무엇을 직접 알았는지, 언제 알았는지, 그리고 내게 하지 않은 말이 또 있는지였다.

    ■ 용서할지 정하기 전에, 알고 싶은 것부터 물었다

    친구가 조심스럽게 “그래도 우리 사이는 괜찮은 거지?” 하고 물었다. 예전 같으면 어색한 자리를 빨리 끝내려고 “그럼, 괜찮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돌아오면 다음에 친구 이름이 전화기에 뜰 때 또 망설일 것 같았다.

    “지금 괜찮다고 하면 그건 빈말이야. 그날 네가 직접 본 것하고 남한테 들은 것부터 나눠서 얘기해줘. 내가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이면 되는지 알고 싶어.”

    이런 이야기는 한 번에 다 듣기 어려울 수 있다. 더 들으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은 날에는 “오늘은 언제 알았는지만 듣고 싶어. 나머지는 내가 다시 물을게”라고 해도 된다. 친구 사정을 이해하는 일과 이 일을 언제까지 이야기할지 정하는 일은 각각 내 속도로 해도 된다.

    아내의 외도에 대한 대답은 아내에게 들어야 한다. 친구에게는 친구가 알고도 말하지 않은 그 시간에 관해 물을 수 있다. 둘을 구분하고 나서야 식당에 들어올 때보다는 내가 할 말이 조금 분명해졌다.

    그날 우리는 다음 약속을 잡지 않고 일어섰다. 그렇다고 오래된 우정을 그 자리에서 끝내기로 한 것도 아니었다. 계산대 앞에서 친구가 “나중에 전화해도 되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상대를 안심시키려고 서둘러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내가 먼저 할게. 그때는 나한테 어려운 얘기도 해줘. 듣고 어떻게 할지는 내가 정하고 싶어.”